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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태원
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로서 주한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, 외국 상품, 외국 문화의 집결지. [명칭 유래] 조선시대에 이곳에 있었던 이태원(梨泰院)이란 역원(驛院)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.
이태원
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던 마을로서, 성현(成俔)의 ≪용재총화≫에 “남산 남쪽의 이태원(李泰院) 마을 사람들은 다료(茶蓼)를 심고 홍아(紅芽)를 경작하는 일을 좋아했다.”는 기술로 보아 15~16세기
이태원
용산구 이태원에 있던 마을로서, 조선 효종 때 이 마을에 배나무가 많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. → 이태원동 [마을]
이태원
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던 마을로서, 임진왜란 당시 침입한 왜병들이 이 마을에 있던 운종사(雲鐘寺)에 머물면서 여승들을 겁탈하여 다른 씨앗이 잉태되었다고 속되게 불렀다고 한 데서 마을 이름이
이태원
조선시대에 공용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둔 원과 관련하여 생긴 지역의 이름. '李泰院', '利泰院'이라고도 쓴다. 대개 역원(驛院)을 두면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의 이름도 원의 이
이태원
[정의]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‘이태원’이라는 마을 명칭의 유래를 설명하는 전설. [줄거리]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이 서울로 쳐들어왔을 때의 일이다. 당시에는 지금의 이태원 황학골이
이태원
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지역에 있었던 원. [내용] 공무여행자의 숙박시설로 영남로(嶺南路)로 향하는 첫번째 원이었다. 원래 위치는 현재의 한강로 2가 부근으로 이태원동보다는 서쪽에 있었다.
이태원
<서편제>, <태백산맥>, <춘향뎐> 등을 제작한 전 태흥영화사 대표로 생전 총 3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. 이러한 영화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, 백상예술대상 특별상 등을 수상한 바
이태원
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던 마을로서, 남산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 이태원이라는 역원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. 이태원은 옛 문헌에 이태원(李泰院) · 이태원(異胎院) · 이태
이태원
이태원동 동명은 이곳에 조선시대 이태원이라는 원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. 이태원동은 조선 중기까지는 한성부 남부 성외 지역이었으며, 영조 27년(1751)에 간행된 ≪도성삼군문분계총록≫에 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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